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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을 보는 세 가지 시선(翻訳練習)

강릉을 단순히 바닷가 도시라고만 표현하기엔 아쉽다. 그곳엔 시대를 앞서간 문인들의 문학이 있고, 세계 최초이자 유일한 화폐 모자가 태어난 고장이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향긋한 커피 향이 퍼지는 도시다.
강릉의 커피 거리는 1980년대, 작은 어촌마을 ‘안목(Anmok 安木)’에 생긴 최초의 자판기에서 시작됐다. 이후 저마다 맛을 차별화 한 수십 대의 자판기 사이로 카페가 생기기 시작해 지금은 외국인들도 자주 찾는 강릉의 대표 커피 거리가 되었다.

江陵を単純に海辺の街とだけ表現するのは惜しい。そこには時代を先導した文人たちの文学があり、世界最初で唯一の貨幣となった母子が生まれた故郷でもあり、韓国を代表する香り高いコーヒーが広がる街だ。
江陵のコーヒー通りは1980年代、小さな漁村「安木」にできた最初の自販機から始まった。それ以降、それぞれの味に差別化させた数十台の自販機の間にカフェができ始め、今では外国人たちもこぞって訪れる江陵の代表的なコーヒー通りとなった。

첫 강릉 여행에서 동생과 서로의 신발을 경포대 모래밭에 파묻고 놀다가 잃어버린 적이 있다. 조선시대 정치가이자 문인인 정철(鄭澈, 1536~1593)이 “십 리나 펼쳐진 흰 비단” 이라고 표현했던 것처럼 끝없는 해안가 중 어느 곳에 신발을 묻었는지 도저히 찾을 수가 없어서 파도를 보며 발을 구르던 기억이 난다. 해 질 무렵이라 신발 사는 걸 포기하고, 저녁 내내 맨발인 채였다. 그때의 느낌이 아직도 생생한 건 걸을 때마다 발바닥을 간질이던 따뜻한 모래알 때문이다. 그날 강릉의 모래가 마치 강릉의 살갗처럼 느껴졌다.

初めての江陵旅行で、弟と互いに靴を鏡浦台の砂場に埋めて遊んでいたら、失くしてしまったことがあった。朝鮮時代の政治家であり、文人の「鄭澈」が、10里も広がる白い絹のようだと表現したように、果てしない海岸のどこに靴が埋まっているのか、到底見つけ出せそうにないので、波を眺めながら地団駄を踏んだのを思い出す。日没の頃で、靴を買うのも諦めて、夕食の間も裸足で過ごした。その時の感覚が今も鮮明なのは、歩くたびに足の裏をくすぐる温かい砂粒のせいだ。その日、江陵の砂がまるで江陵の肌のように感じられた。

비단:シルク、絹
구르다:転がる、転ぶ、地団駄を踏む

조선 중기 시인 허난설헌(1563~1589)은 아름다운 용모에 문학적 자질까지 뛰어났지만, 불우한 가정사로 그의 작품 213수 중 128수는 세상을 떠나 신선 세계로 들어가고 싶은 내용을 담고 있다.

朝鮮中期の詩人、蘭雪軒許は美しい容姿に、文学的な素質まで備えていたが、不遇な家庭環境によりその作品213首のうち、128首は「この世を去り、神仙の世界に入りたい」という内容が込められている。

느리게 걷는 여행
작가가 되고 난 후, 강릉에서 가장 먼저 가보고 싶었던 곳은 최초의 한글 소설 『홍길동전(洪吉童傳)』을 쓴 허균(Heo Gyun 許筠, 1569~1618)과 그의 누이 허난설헌(許蘭雪軒, 1563~1589)의 생가였다. 허균은 그의 소설에서 세상 모든 이들이 평등하게 사는 이상사회인 ‘율도국’을 꿈꾸던 조선의 아웃사이더였다. 그는 “나는 성격이 곧아서 남이 틀린 짓을 하면 참고 보지 못하고, 속된 선비들의 멍청한 짓은 비위가 상해 견딜 수 없었다”라고 말했고, 올곧은 성격이 문제가 돼 파직과 복직을 반복했다. 그는 성리학 이외에 다른 학문이 설 자리가 없던 조선에 천주교 서적을 들여왔고, 서산대사 같은 승려들과도 교류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눈에 띄는 건 누이의 재능을 알아본 그의 혜안이었다. 그는 27세에 요절한 누이의 이른 죽음을 애통해하며 그녀가 쓴 시를 모아 유고 시집을 냈다. 이는 조선시대엔 극히 희귀한 일이었고, 허난설헌의 시집은 중국에 먼저 알려졌다.

ゆっくり歩く旅行
作家になってから、江陵で一番最初に行きたかった場所は、最初のハングル小説「洪吉童傳」を書いた許筠と、その姉である許蘭雪軒の生家だった。許筠は、彼の小説で、世の全ての者が平等に生きる理想社会である「栗島(ユルド)国」を夢みていた朝鮮のアウトサイダーだった。彼は「私はまっすぐな性格なので、人が間違ったことをすれば我慢できず、俗っぽい学士たちの愚かな行為は吐き気がするほど耐え難かった。」と、生真面目な性格が問題となり罷免と復職を繰り返した。彼は生理学以外に、他の学問が入って来ることのなかった朝鮮にキリスト教の書籍を持ち込み、西山大師のような僧侶たちとも交流した。彼は27才に早死した姉の死を悼み、彼女が書いた詩を集めて、儒教詩集を出した。これは朝鮮時代において、かなり珍しい出来事で、許蘭雪軒の詩集は中国で先に知れ渡った。

곧다:正直だ、まっすぐだ
속되다:俗っぽい, 俗だ
선비:学者、士人、昔 学識はあるが官職につかなかった人
파직:罷免
요절하다:

허균•허난설헌 기념공원(許筠•許蘭雪軒 記念公園)에는 경주 삼릉에 비견할 만한 소나무 군락지가 있었다. 한 눈에도 수백 그루는 될 법한 소나무에 일일이 번호가 적혀 있는 게 신기해서 소나무에 걸린 숫자를 하나씩 헤아리다가, 590번째 소나무 근처에서 강릉 바우길이라고 적힌 표지판을 만났다. 찾아보니 ‘바우(BAU)’는 강릉 말로 바위라는 뜻인데, 공교롭게도 손으로 쓰다듬는 것만으로도 쓰러져 가는 사람을 살아나게 하는 능력이 있는 바빌론 신화에 나오는 여신의 이름과 같았다. 이 길을 치유의 길이라 불러도 무방할 것 같았다.

許筠•許蘭雪軒 記念公園には、慶州の三陵にも劣らない松の群生地があった。一目で数百株はあると分かる程の、松一本一本に番号が書かれているのが不思議で、松にぶらさがっている数字を一つずつ数えていたら、590番目の松の近くで江陵バウ道と書かれた標識に出会った。調べてみると「バウ」は江陵の言葉で「岩」という意味で、ありがたいことに手で撫でるだけで、死にかけている人も生き返るという能力を持つ、バビロン神話に出てくる女神の名前と同じであった。この道を治癒の道と呼んでもおかしくはないだろう。

바우길은 대관령에서 해안, 옥계에서 주문진, 강릉의 동서남북을 연결하는 17개 구간 총 280km의 장대한 길이었다. 걷기에 좋은 날이라 작정하고 걸어보기로 했다. 얼마 안 돼 홍길동 조각상이 놓인 다리 하나를 만났고, 허난설헌이 쓴 시 「죽지시(竹枝詞)」가 새겨진 기념비가 보였다.

バウ道は大関嶺から海岸、玉渓から注文津、江陵の東西南北を繋ぐ17の区間 総距離280kmの長大な道だった。散歩日和なので、歩いてみることにした。間もなくしてホン・ギルドン彫刻像が置かれた橋と出会い、許蘭雪軒が書いた詩「竹枝詞」が刻まれた記念碑が見えた。

우리집은 강릉땅 갯가에 있어(家住江陵積石磯)
문 앞 흐르는 물에 비닷옷 빨았지요.(門前流水浣羅衣)
아침이면 한가롭게 목란배 매어 놓고(朝來閑繫木蘭棹)
짝지어 나는 원앙새를 부럽게 보았지요.(貪看鴛鴦相伴飛)

私の家は江陵の地、海辺にある
扉の前に流れる水で絹の服を洗いました
朝にはのんびり木蓮舟を結んでおいて
一対の飛んでいるオシドリを羨ましく見ていました

갯가:海辺
원앙새:オシドリ

시 한 수 읽고 주변을 둘러보다가 갈대밭을 낀 커다란 현대식 건물이 아르떼 뮤지엄(ARTE MUSEUM)이라는 걸 깨달았다. “사진 찍기에 지금 이곳보다 핫한 공간은 없다!”라는 리뷰와 함께 최근 MZ 세대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몰입형 미디어 아트 전시관이 허균•허난설헌 기념공원 근처에 있었다. 예약 없이 보기 힘든 전시라는 말을 들었던 터라, 입장 대기 줄이 없는 것을 보고 의아해하며 전시관에 들어갔다가 가득한 사람들을 보고 놀랐다. 너나 할 것 없이 핸드폰을 들고 촬영하는 관람객들의 손들이 어두운 전시관 안에선 하나의 오브제처럼 보였다. 눈앞까지 덮쳐오는 빛과 소리에 사람들이 놀라는 모습 또한 이곳에선 일종의 행위 예술처럼 느껴졌다.

詩一首を読んで辺りを見ると、葦原に建つ大きな現代風の建物「アルテミュージアム」に気付く。写真を撮るのに、ここほど人気な空間はない!というレビューとともに、最近のMZ世代たちは暑い関心を寄せている、没入型メディアアート展示館が許筠•許蘭雪軒 記念公園の近くにあった。予約無しではなかなか入れない展示だと言う話を聞いていたので、入場待ちの列がないのを見て、恐る恐る展示館に入ってみるが、大勢の観覧客でいっぱいなのを見て驚いた。やはり、スマホを手にして撮影する観覧客たちの手が、真っ暗な展示館の中でひとつのオブジェかのように見えた。目の前まで迫りくる光と音に人々が驚く様子や、ここでは一種のパフォーマンスも芸術のように感じられた。

덮쳐오다:押し寄せる、迫りくる

허균의 생가터에 있다가 최첨단 기술이 적용된 뮤지엄에 오니 ‘올드 앤 뉴’라는 말이 떠올랐다. 자연을 모티브로 한 미디어 아트 속을 걷다 보니 눈앞으로 쏟아지는 폭포와 파도 안에 갇힌 사람이 되기도 하고, 전설 속의 백호랑이를 마주한 밀림 속 방랑자가 되었다가, 아리랑이 울려 퍼지는 밤하늘을 바라보는 시간 여행자가 되기도 했다. 입장료가 아깝지 않았던 건 셔터를 누르지 않고는 버틸 수 없었던 수백 장의 사진이 증명한다.

許筠の生家の後は、最先端技術が使われているミュージアムに来たので「オールド&ニュー」という言葉が思い浮かんだ。自然をモチーフにしたメディアアートの中を歩いてみると、目の前に降り注ぐ滝と波の中に閉じ込められた人にもなれて、伝説の生き物「白虎」に遭遇した密林の中の放浪者にもなれて、アリランが響き渡る夜空を眺めて時間旅行もできた。入場料が惜しくなかったのは、シャッターを切らずにはいられなかった数百枚の写真が証明している。

하지만 나를 더 놀라게 했던 건 뮤지엄을 나온 후 다리 끝에서 만난 광활한 물이 바다가 아니라 호수라는 사실이었다. 강릉을 오랫동안 바다의 도시라고만 생각했던 내겐 끝이 보이지 않는 호수가 바다와 함께 있는 풍경이 놀라웠다. 바닷물이 해안의 모래를 밀어 생긴 모양의 사주가 바다를 차단하면서 생긴 호수를 ‘석호’라고 부르는데, 강릉의 경포호가 바로 석호다.걷는 속도로 본 세상은 가장 아름답다. 달리거나 뛸 때는 볼 수 없었던 무수한 풍경이 천천히 걸을 때 비로소 보이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경포가시연습지와 날아든 작은 나비와 풍뎅이도, 시간에 따라 너울대는 긴 그림자와 그늘을 바라보는 일 역시 걷는 속도에 따라 머문다. 바쁜 일상이 아닌 한적한 여행에서 느린 걸음이 주는 선물이다.

しかし、もっと私を驚かせたのはミュージアムを出た後、橋の先で出会った広大な水が海ではなく湖だと言う事実だった。江陵を長い間、海の街としか思っていなかった私にとって、果てしない湖が海と共にある風景に驚いた。海水が海岸の砂を押して作った土手のような砂州が、海を遮断して作り出した湖を「潟湖」と呼び、江陵の鏡浦湖がまさに潟湖だ。歩く速度で見る世界は最も美しい。走っている時は見られなかった、無数の風景がゆっくり歩くときに初めて見えるからだ。美しい鏡浦オニバス湿地と飛んできた小さな蝶とコガネムシも、時間とともにゆらめく長い影と木影を見つめるのも、やはり歩く速度によって留まる。忙しい日常ではなく、静かな旅行でゆったりとした歩みがくれるプレゼントだ。

광활하다:広闊な、広大な
사주:砂州
석호:潟湖
비로소:はじめて
풍뎅이:コガネムシ
너울대다:ゆらめく

경포가시연습지는 멸종위기종인 가시연꽃의 복원작업이 성공하여 군락을 이룬 곳이다. 습지와 습지 사이엔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으며, 수달을 포함한 다양한 희귀조류 철새들이 찾아온다.

鏡浦オニバス湿地は、絶滅危惧種のオニバスの復元作業に成功し、群生を成している。湿地と湿地の間には、遊歩道が作られており、カワウソを含む様々な希少鳥類、渡り鳥が訪れる。

수달:カワウソ
철새:渡り鳥

검은 대나무의 집
한 나라를 상징하는 것 중 대표적인 것은 무엇일까. 캐나다의 단풍나무나 브라질의 삼바, 프랑스의 에펠탑을 떠올리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화폐라고 생각한다. 세계 기축 통화인 ‘달러’ 중 가장 큰 단위인 100달러에는 미국 건국의 아버지인 벤저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 1706~1790)의 얼굴이 새겨져 있다. 그렇다면 한국의 최고액권인 5만 원에는 누가 있을까? 바로 신사임당(Sin Saimdang 申師任堂, 1504~1551)이 있다.

黒い竹の家
ある国を象徴するものの内、代表的なものは何だろうか。カナダのメープルや、ブラジルのサンバ、フランスのエッフェル塔を思い浮かべる人もいるだろうが、私の場合は貨幣だ。世界の基軸通貨である「ドル」のうち、最も大きな単位である100ドル札にはアメリカ建国の父であるベンジャミン・フランクリンの顔が刻まれている。では、韓国の最高額紙幣である5万ウォン札には誰が描かれているのか?まさに申師任堂である。

기축:基軸通貨

우리나라 화폐 속 인물은 총 다섯 명인데 그중 두 명이 조선 최고의 사상가이자 영의정이었던 율곡(栗谷) 이이(李珥, 1536~1584)와 그의 어머니 신사임당이다. 말하자면 세계 최초이자 유일무이한 모자 화폐 인물인 셈이다. 1972년 율곡이 오천 원권 화폐 인물로 채택된 후 그가 태어난 집, 오죽헌(烏竹軒)은 화폐의 한 자리를 지금까지 꿰차고 있다. 오죽(烏竹)은 수피가 검은 대나무의 일종으로 오죽헌은 뜰 안에 오죽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我が国の貨幣の中の人物は全部で5人であるが、そのうち2人は朝鮮最高の思想家であり、領議政であった栗谷李珥と彼の母親である申師任堂だ。

영의정:領議政(朝鮮王朝代, 議政府の最高官職)

지금의 모습은 1996년 정부의 문화재 복원 사업으로 조성된 것이다. 이후 1998년 강릉시립박물관과 통합되면서 강릉의 변천사와 역사, 문화, 유적 등 볼거리가 풍성해져 연간 80~90만 명의 사람들이 찾고 있다.

今の姿は1996年、政府の文化財復元事業により建てれられたものだ。以降1998年に江陵市立博物館と統合され江陵の変遷と歴史、文化、遺跡などの観光資源が豊かになり年間80~90万人が訪れている。

오죽헌으로 향하는 입구에 선 사람들이 율곡과 신사임당의 화폐 기념물 옆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어떤 연인은 화폐 전시물 앞에서 준비해온 5만 원과 5천 원을 꺼내어 기념사진을 찍기도 했다. 유명인의 생가를 둘러보는 일은 그 인물의 내면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과도 같다. 비가 온 직후 오죽헌의 검은 기와와 초록의 숲은 그 색이 한층 짙어져 오가는 이들의 마음을 차분하게 하고, 이따금 바람에 흔들리는 청량한 검은 대나무 소리는 더위를 식혀 주었다.

烏竹軒の入り口に立っている人たちが、栗谷と申師任堂の紙幣記念碑と一緒に写真を撮っていた。あるカップルは紙幣の展示物の横で、持参した5万ウォン札と5千ウォン札を出して記念撮影をしていた。雨が降った直後、烏竹軒の黒い瓦と緑豊かな森がより一層色濃くなり、行き交う人の心を落ち着かせてくれる。時々、風に揺れる清涼な黒い竹の音が暑さを和らげてくれた。

기와:瓦
이따금:時々

커피의 도시
강릉의 커피 거리는 1980년대, 작은 어촌마을 안목(Anmok 安木)에 생긴 최초의 자판기에서 시작됐다. 안목항에 들른 사람들 사이에서 자판기 커피가 유독 맛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한 것이다. 이때부터 안목 해변 도로에 하나둘 자판기들이 생겼다. 자판기 주인들은 자신들만의 노하우로 커피 맛을 차별화했고 이를 설명하는 빼곡한 안내문을 붙이기 시작했다. 이후 수십 대의 자판기 사이로 카페가 생기기 시작해 지금은 외국인들도 자주 찾는 강릉의 대표 커피 거리가 되었다.

コーヒーの街
江陵のコーヒー通りは1980年代、小さな漁村 安木にできた最初の自販機から始まった。安木に立ち寄った人々の間で自販機コーヒーが意外と美味しいという噂が徐々に広まっていった。この時から安木の海岸道路に、少しずつ自販機が増えた。自販機の持ち主たちは自身のノウハウで、コーヒーの味を差別化し、これを説明する事細かな案内文をつけるようになったのだ。そうして、数十台の自販機の間にカフェができるようになり、今では外国人たちもよく訪れる江陵の代表的なコーヒ―通りになった。

빼곡하다:ぎっしり詰まった

경포대 일대는 1982년 지정된 경포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바다와 분리된 경포호와 송림, 흰 모래, 푸른 바다가 조화를 이루는 경포해수욕장은 동해안 최대 해변으로 유명하다.

鏡浦台一帯は、1982年指定された鏡浦道立公園として指定された。海と分離した鏡浦湖と松林、白い砂浜、青い海が調和を成している鏡浦海水浴場は東海岸最大の海岸で有名だ。

1980년대 태어난 세대에겐 강릉을 대표하던 것이 경포대와 같은 바다였다면, MZ세대에게 강릉은 커피의 도시다. 인구 20만 명이 조금 넘는 작은 도시에 500여 개에 이르는 카페가 있다. 카페 ‘보헤미안 박이추’는 강릉의 커피가 유명해지게 된 시발점이다. 한국의 커피 역사를 말할 때 박이추(朴利秋)라는 이름이 빠지지 않는 건 그가 생두에 열을 가해 볶는 로스팅을 처음 시도했기 때문이다. 로스팅의 단계에 따라 커피 맛과 향이 달라지는데, 특유의 쓴맛 때문에 커피를 거부하던 사람들도 커피를 ‘맛’을 넘어 ‘향’으로 즐기는 법을 알게 되면서, 그의 커피는 점점 유명해졌다.

1980年代に生まれた世代には、江陵を代表するものが鏡浦台と海ならば、MZ世代には江陵はコーヒーの街だ。人口20万人と少しの街に、500軒余りのカフェがある。カフェ「ボヘミアン 朴利秋」は、江陵のコーヒーが有名になった始発点である。韓国のコーヒー史を語る上で、朴利秋さんの名前が欠かせないのは、彼が、豆に熱を加えて炒る行程「ロースティング」を初めて行ったからだ。ロースティングの段階に従ってコーヒーの味と香りが変わるが、特有の苦みによりコーヒーを好まない人々も、コーヒーの「味」を超えて「香り」で楽しむ方法を知り、彼のコーヒーは徐々に有名になった。

혜화동과 안암동에 처음 문을 연 카페 보헤미안은 2001년 갑자기 강릉의 경포로 자리를 옮겼다. 서울에 분점을 내는 대신, 지방을 선택한 건 파격적이었다. 늘 내 관심을 끄는 건 누군가의 이런 작은 선택 하나가 나비효과를 일으키며 도시의 성격을 완전히 바꿔 놓는 일이다. 미국의 포틀랜드가 뉴욕이나 LA 같은 도시의 복잡함에 질린 사람들의 안전지대가 됐던 것처럼 박이추에게 강릉은 자신을 품어줄 완벽한 도시로 보였다.

恵化洞と安岩洞に初めてオープンしたカフェ「ボヘミアン」は、2001年に突然江陵の鏡浦に移転した。ソウルでは分店を出し、本拠地として地方を選択するという型破りな形態をとった。いつも私は、誰かの小さな選択により大きなバタフライ効果が生まれる都市固有の性格を完全に変えてしまうことに興味を惹かれる。アメリカのポータルランドがニューヨークやLAのような複雑な都市に飽きた人たちの安全地帯になっていたように、朴利秋にとって江陵は自身を抱いてくれる完璧な街に見えたのだ。

이제 사람들은 강릉에 가면 기념품을 사듯 커피 전문점에 들러 원두를 구입하고 대형 로스팅 기계 앞에서 사진을 찍는다. 또 커피 박물관 커피키퍼에 들러 커피의 역사와 다양한 품종의 커피나무를 관찰한다. 야근을 거듭하는 밤에는 잠을 깨기 위해 달콤한 믹스 커피를, 아침 출근길에는 아메리카노를, 낮에 졸음 밀려오거나 허기를 느낄 때면 라떼를 마시는 것이 일상이 됐다. 이러한 한국인의 커피 사랑은 세계에서 도시 대비 가장 많은 카페가 있는 나라로 만들었다. 한 잔에 담긴 커피가 이전에는 없던 새로운 문화와 도시를 만든 셈이다.

今や、人々は江陵に行けばお土産を買うように、コーヒー専門店に立ち寄って豆を購入し、大型のロースティング機械の横で写真を撮る。また、コーヒー博物館「コーヒーカーパー」に寄って、コーヒーの歴史と多様な品種を観察する。度重なる残業の夜には、眠気覚ましに甘いミックスコーヒーを、朝の出勤時にはアメリカ―ノを、昼間の眠気に襲われたり、やる気が起きない時はラテを飲むのが日常になった。こんな韓国人のコーヒー愛は、世界の都市に比べて最もカフェが多い国を作った。一杯のコーヒーが以前にはなかった新しい文化と都市を作ったと言えるだろう。

출처: 코리아나-On the Road (k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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