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 게임 리뷰] 토가이누의 피(2005-2-25) 상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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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2005년 2월 25일에 발매된 토가이누의 피입니다. "BL 게임의 전설" 이라는 수식어가 붙었을 정도로 BL 게임을 모르시는 분들도 이름만큼은 들어보셨거나 여성향 컨텐츠의 트렌드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 타이틀이며, 니트로 키랄(NITRO CHiRAL)이 BL 게임의 메이저 브랜드로 있게 해준 데뷔작입니다.
그러나 토가이누의 명성이 과장되어 토가이누가 최초의 스토리 BL게이다, 니트로플러스 소속 유명 각본가 우로부치 겐이 토가이누를 집필했다, 니트로 키랄이 모회사인 니트로플러스를 먹여살렸다라는 루머가 돌기도 했었는데 달리 보면 그만큼 토가이누의 센세이션과 충격이 컸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나무위키의 토가이누와 키랄 문서에도 이 잘못된 사실에 대해 정정하는 내용이 적혀있습니다만 제 리뷰에서도 적어보자면 우선 토가이누의 피는 최초의 스토리 중시 및 하드 여성향 게임이 아니라는 것, 니트로플러스는 키랄에 의존해야 할 정도로 못 나가는 에로게 메이커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선 토가이누의 피가 탄생하게 된 계기를 설명하기 위해 에로게(미소녀 게임 전반), 여성향 게임의 역사를 짚고 갈 필요가 있겠습니다. 따라서 토가이누의 피 리뷰 1편은 토가이누 자체보다는 다른 게임들의 소개 비중이 높다는 것을 미리 알립니다.
[간략하게 알아보는 미연시의 역사]
[에로게 시장의 역사와 스토리 에로게의 계보]
일본의 최초의 에로게는 논란이 있지만 알려진 타이틀들(나이트 라이프, 롤리타, 야구권) 전부 81년~82년에 발매되었다는 공통점이 있으며 82년, 컴퓨터 PC-9810의 보급과 함께 에로게 시장이 생겨났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렇듯 80년대, 90년대는 미소녀 게임의 태동기로 많은 미소녀 에로게들이 발매되었으나 일본 최초의 성인 게임 심의기구 "컴퓨터 소프트 윤리위원회"를 탄생시킨 사오리 사건(1991년)으로 하드코어하거나 스토리없이 H만을 위한 에로게는 점차 사라지게 되며 엘프의 성인 연예 시뮬레이션 《동급생》이 1992년에 발매되며 에로게의 역사를 바꾸게 됩니다.
《동급생》은 에로게 최초로 스토리텔링을 도입했다는 것과 에로보다 미소녀의 모에 요소를 중심으로 내세웠다는 것이 특징으로 이후 발매될 스토리 중시 에로게(이하 스토리게, 시나리오게)와는 성격이 다르나 "마음에 드는 미소녀와 연애(H)에 도달하기 위해/미소녀에게 이입하기 위한 서사를 설계한다" 라는 공식을 내세웠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듯 《동급생》은 시나리오를 메인으로 내세우고 시나리오로 호평받은 에로게들인《EVE ~bust error~》(1995년 - 시즈웨어), 《키즈아토 - 1996년 - 리프》, 《Kannon》(1999년 - 키), 《월희》(1999년 - 타입문)이 발매될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렇듯 에로게/미소녀 게임의 전성기가 지속될 무렵 주식회사 디지터보(현 콘테라이드)도 전용 에로게 브랜드 "니트로플러스"를 설립하고 2000년 2월 25일, 우로부치 겐을 영입해 메이커 및 우로부치 겐의 에로게 데뷔작 《Phantom -PHANTOM OF INFERNO-》(이하 팬텀 오브 인페르노)을 발매하게 됩니다. 팬텀 오브 인페르노는 널리 알려진 것처럼 홍보부의 실수로 대거 반품되어 회사 자체가 부도 위기에 몰렸으나 하드보일드 건액션과 미소녀의 조합, 하드한 세계관 속 펼처지는 드라마틱하고 인간찬가 테마가 담긴 스토리, (당시 시대 기준으로)고퀄리티 3D 모델링으로 인터넷상에서 호평을 받으며 기사회생. 니트로플러스가 지속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니트로플러스는 3대 순애, 시나리오 에로게 메이커로 알려진 타입문, 키, 리프와는 다른 다크한 세계관을 필두로 미소녀와 어울리지 않거나 대중적이지 않은 소재들을 내세웠기에 큰 주목을 받지 않았지만 충성심이 강한 매니아층을 양성했으며 진짜로 니트로플러스를 먹여살린 대표작이자 데몬베인 ip의 시작을 알린 《참마대성 데몬베인》과 우로부치 겐의 색채가 강력하게 나타난 《사야의 노래》가 2003년에 발매되었습니다. 《사야의 노래》는 러브크래프트 풍 코스믹 호러와 고어, 순애물을 표방했음에도 불구하고 누키게에서나 볼 수 있는 일부 소재때문에 정작 발매 당시에는 주목을 못받았으나 나중에 재평가를 받으며 2003년 나키게 부문에서 2위를 차지하게 되는 등 니트로플러스가 추구하는 색채에 걸맞는 게임임을 알렸습니다.
2010년 이후는 알다시피 라이트 노벨이 대세가 되었고 인터넷의 발달로 스포일러를 쉽게 접하면서 비싼 돈을 주고 에로게를 살 이유가 없어지게 된 것, 지나친 레드오션화로 인한 기본도 안된 쿠소게 및 양산형 에로게들의 범람 등으로 에로게 시장은 쇠퇴를 맞이하게 되었고 2020년대에 이르러서는 버츄얼 유튜버, 모바일 소셜 게임에 밀려 호흡기만 단 상태가 되었다..그 과정에서 에로게 메이커들이 폐업하거나 시장철수, 전연령 시장으로 눈을 돌리면서 비주얼 노벨 기반 에로게는 멸망 직전에 놓이게 되었다는 것은 널리 알려졌죠.
니트로플러스도 이 기류를 타고 전연령 컨텐츠를 본업으로 삼으며 에로게를 필두로 한 성인 컨텐츠 사업은 니트로 오리진(NITRO ORIGIN) 브랜드로 독립시키면서 서브로 밀어낸 상태입니다.
쓰다보니 에로게 자체의 역사보다는 시나리오 에로게의 탄생과 초창기 니트로플러스의 역사에 가까운 것 같은데 여성향 게임의 역사와 토가이누의 피가 나올 수 있었던 배경에 대한 부연설명, 빌드업 정도로 보시면 됩니다.
[여성향 게임-BL 게임의 역사]
최초의 여성향 게임은 1994년 코에이의 브랜드 루비파티에서 개발된 《안젤리크》로 최초의 오토메 게임이기도 합니다.
최초의 BL 게임은 똑같이 1994년에 발매된 《BOY×BOY ~사립 고료 학원 세이신 기숙사~(BOY×BOY 〜私立光稜学院誠心寮〜)》로 기재되어있습니다. 이렇듯 여성향 게임은 94년부터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으며 에로게와 다르게 PC-98이 아닌 윈도우즈 시기부터 시작했다보니 PC 기종 여성향 게임들 중에서는 DOS 기종의 4bit 16색 그래픽을 가진 게임이 없습니다.
90년대는 BL 열풍이 불면서 《BOY×BOY》를 시작으로 에로게 메이커들은 여성 유저 층들을 공략하기 위해 BL 게임 브랜드를 만들거나 BL 게임을 만들기 위해 에로게 시장에 뛰어드는 형태로 BL 게임 개발 열풍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오토메 게임, 오토메 에로게도 별도로 성장하고 있었지만 당시의 BL 게임 마냥 주목도는 높지 않았습니다.
이렇듯 2000년대 BL 게임에서는《신무의 새》, 《아포크리파 제로》, 《화귀장》으로 스토리텔링과 뛰어난 감정선으로 호평받은 게임들이, 《왕자님의 Lv》와 《내 밑에서 발버둥을 쳐라》, 《제국천전기》등 RPG, 시뮬레이션 게임들이 나오기도 하는 등 전성기의 정점을 찍었습니다. 그 이후야 에로게 시장이 몰락하면서 같이 몰락해버렸다는 것은 유명하죠.
이렇듯 《토가이누의 피》는 최초의 스토리텔링 중시 BL 게임이 아닐 뿐더러 시스템도 평이한 선택지 분기형 비주얼 노벨입니다. 이럼에도 왜 《토가이누의 피》는 BL 게임의 전설, 여성향 게임을 넘어선 여성향 컨텐츠의 역사에 한 획을 그은 게임으로 평가를 받으며 지금도 명성을 떨치고 있을까요?
[토가이누의 피는 왜 성공할 수 밖에 없었나]
티저 사이트에 기재된 샘플 CG만 아니라 핀업 일러스트들만 봐도 매우 훌륭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당연히 여성향 게임도 미연시 계열인데 그래픽 디자인이 좋은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냐? 라는 말이 나올 수 있겠습니다만 토가이누 발매 이전에 나온 BL 게임의 원화와 당시 BL 매체의 주류 그림들을 살펴보겠습니다.
당대 여성향 매체의 그림들을 비하하는 의도는 아니나 작가의 의도, 취향에 따라 그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러 과장 및 간략화(데포르메)를 하는 것과 못 그려서, 기본기를 안 갖춘 채 막 그리는 것은 염연히 다르고 이에 따른 실력 차이는 명백하게 분간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으며 토가이누 이전 여성향 매체 그림들은 인체 및 투시로 대표되는 미술의 기본기에 지나치게 신경쓰지 않거나 채색 조차 대충하는 경향이 매우 강했습니다. 이렇다보니 여자를 그리고 남자라 우기는 지나치게 여성화된 미소년 쇼타 내지는 아예 근육을 안그리는게 났다 싶을 정도로 붕괴된 떡대 캐릭터들이 범람했었고 게임 조차 남성향 에로게의 CG와 비교하면 돈을 아끼려는 티가 매우 났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토가이누의 원화는 여성향 매체들 중 최초로 골격과 근육을 포함한 남성의 인체를 리얼하게 그렸으며 채색 또한 니트로플러스 그래픽커들의 장인정신으로 입체감을 살리기 위해 공을 많이 들인 덕에 게임 발매 후 여성향 매체는 근육과 손, 발 등 인체 묘사에 신경을 쓰거나 현실적인 비례를 베이스로 미형으로 데포르메된 그림체가 유행하다못해 주류가 되었고 2020년 현재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림 하나로 동아시아 여성향 그림계에 영향을 대거 미친 혁명이라 봐도 무방합니다.
이외 히트 요인으로는 피비린내가 나다못해 시궁창 냄새가 나는 디스토피아 세계관을 메인으로 내세웠으나 단순히 자극적인 요소로만 끝난 것이 아닌 여성향 특유의 세밀한 감정묘사와 인간찬가 메시지와 어우러져 니트로플러스식 순애와 스타일을 BL로 해석하는 데 성공했다는 점, 악명높은 고어 엔딩을 CG로 보내 화제가 되었다는 점, 니트로플러스의 백업으로 홍보와 개발에 문제가 없었다는 점이 있겠으나 토가이누가 해당 소재들의 원조격이 아니라는 점, 그래픽 디자인의 혁신보다는 영향이 크다고 생각되지 않아 자세히 서술하지 않겠습니다. 다음 편은 본격적인 토가이누 리뷰를 시작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