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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인생

하루카에게

僕が思う一番幼い頃の記憶は父が母方の叔父たちと戦っていました。
その当時が4~5才頃でした。
最初の記憶が窓ガラスが割れて頭に血が出ている姿のお父さんと涙を流す姿のお父さんでした。
祖母の家に住んでいたが晋州で幼稚園の時から学校を通いました。
学校が終わって帰ってくると怖かったです。
いつも毎日父親は酒を飲んで夜明け4~5時まで酒を飲んで家族をひざまずかせ説教をしました。
僕たち三兄弟は理由もなく頬を殴られたり、足を殴られたりしました。痛かったですが、その時から理由があると思いました。
後でどんなに良い祝福があるようにこんなに大変な試練を与えるのか?毎回こんな考えで生きてきました。
こんな父が与える試練は高校の寮に入って終わります。
多分その時思春期の頃に成長できなかったようです。
僕の背が低いとか···でも父を除いた家族の中で僕が一番大きいです。
中学校の時は恩を受けたようです。
その時持っていた信念とか考え方は世の中に悪い人はいないから皆親しくなら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考えを持っていたがその当時いじめだった友達に先に手を差し出して親しくなったら僕も同じいじめになっていました。
ある日学校で話中に"遥香は声聞きたくないから話さないで"と言われていつの間にか口数も少なくなり小心者になりました。
そんな時代を過ごして、高校に入ることになり、高校の寮に入ることになったのですが、高校3年が地獄でした。
毎回学校暴力に苦しめられ、理由もなく頬を殴られたり、先輩にはうつぶせの状態でお腹を足で50回以上殴られました。
その時、息をするのが本当に大変だった記憶があります。
涙を本当にたくさん流しました。
寮に行きたくありませんでしたが、仕方ありませんでした。うちの家族は本当に貧しかったから国が支援してくれる学校に入学したんですよ。
それでも、ひとつの支えは踊ることが好きでした。
踊ることが夢だという目標がありました。
1年生の時は公演に10回以上出たようです。
いつも毎日踊っていました。
いつも心臓が震えながら気をもんで学校に通わ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んです。
そうやってなんとか高校の卒業をすることになり、卒業式の時は写真も撮れずに家に帰りました。
そんなことも知らずに来るなと言っていた学校に父は来ましたが、一緒にすぐ家に帰りました。
実は遥香に卒業アルバムの写真を見せる時も心臓がドキドキして怖かったです。
中学校の卒業アルバムの写真は僕がボールペンで消しました。僕の学生時代は良い時代がありません。
僕には地獄でした。
それで、実は今も考えると涙が出てきて、今も夢を見ると時々僕を殴っていた人たちが出てきて苦しめます。
そのたびに、号泣しながら涙を流しながら目を覚まします。
高校の卒業時期に合わせて、僕の高校に大学のポスターが貼られました。
芸術学校だったので僕はその時ソウル総合芸術学校に志願をしたが落ちました。
審査委員側から印象深くてまた試験を受けに来いと言われてもう一度行こうとしたが父が"合格できなくて幸いだ"と言って僕の夢を応援してくれる人はいないと思ってあきらめました。
それでもいつも思っていました。
それでもこんなに大きな苦痛と試練に対する補償はあるという考えを持って生きてきました。
そうやって軍隊に入隊して、軍隊で最初は本当に大変でした。
内向的な性格で人々が多い集団に適応できませんでした。
しかし、他人に常に善行を施し、すべての人々は同じ心で近付くべきだという信念で生きてきたので、学校でそのような理由で暴行を受けたが、僕の信念を裏切らなかったです。
軍隊では認められました。
みんな同じ位置から始めるのだから僕の行動はみんなに認められました。
この記憶は僕にとって本当にインパクトのある記憶です。
僕が作戦に出た時、軍幹部がすべての兵士を呼び集め、兵士たちを相談する兵士を支援する人がいるのかと尋ねました。
志願する人がいましたが、すべての兵士が口をそろえて「江東映像兵がするのが正しいと思います」と言ったそうです。
僕はその場にいませんでしたが、本当に良い思い出です。
たぶん僕は軍隊に適応できず、いじめられている兵士まで皆同じように接していたからだと思います。
そのように軍隊で除隊して彼女と会うことになるが、最初の彼女は2ヶ月ほど会って彼女が浮気をして別れて、2番目の彼女は僕の父が血を吐いて倒れて故郷に帰っている時、その彼女はカカオトークのプロフィール写真に友達とパーティーした写真をアップロードしてその時衝撃で情が付かずに別れました。
3番目の彼女は4年間付き合ってたけど.. 嫉妬深いので母と姉の友達まで誰にも会わせませんでした。
その当時、事業を始めてうまくいっていましたが、(月に400万円ほど稼ぎました。
(笑)彼女が自分に気を使わないという理由で仕事ができないように止めました。
それで事業も駄目になり、父が体調を崩して母の仕事を手伝うことになった時、彼女自身に気を使ってくれないと「僕は遥香の父が死んでほしい」と言われました。
その後、その記憶がいつも胸が痛かったです。
その後、父は亡くなることになり、元カノをたくさん恨んでいたようです。
 6ヶ月ほど会った時、性格とか全てがお互いに合わないということを知って別れようとしたが、ずっと泣きながら捕まえてどうしようもなかったし、別れようと決心したが当時の彼女は僕が初恋だから、初めて会った人と別れがどんなに胸が痛いか分かるから待ってくれました。
それが3年6ヶ月かかりました。
そしてちょうど4年目の日だった今年の1月28日に別れました。
僕はいつも僕が好感がなくても僕のことが好きだという人と恋愛をしていました。
それで今回初めて心を決めました。
今度は僕が好きな理想のタイプに会ってみたいと思いました。
インスタグラムを作ってから4ヶ月くらい経ったようですね。
それで、インスタグラムで僕の理想のタイプである本当に可愛い女を見て、初めて感じました。
遥香にメッセージを送りました。
遥香との会話で、僕はいつもわくわくしました。
遥香に初めて空港で会った時は遥香しか見えなかったです。
本当に愛する人に会うと人から光が出るというのが事実でした。
遥香は僕にあまりにも眩しかったです。
空から天使が降りてきたと思いました。
言葉もとても大人っぽくて愛嬌があって、僕に対して配慮をする姿すべてが遥香は完璧でした。
とても緊張しました。
天使と手をつないで、天使とキスをした時、本当にこれが現実か夢か見分けがつかないほどでした。
今は遥香が僕を愛してくれていることを知っているのに、可愛すぎてどこかへ飛ばされないか不安です。
とても美しいですから。
僕がこの文で最初に言った「後でどんなに良い祝福があるようにこんなに大変な試練を与えるのか?」という祝福が遥香だと今は感じています。
この言葉を必ず言いたかったです。
僕はどのセンがこの信念についてあきらめていました。
しかし、遥香に出会って変わりました。
遥香は僕に苦痛と試練を乗り越えた僕に近づいた祝福だということをあまりにも僕も感じています。
一生そばで一生を共にしたいです。
本当に好きです。10分だけ時間をくれと言ったのに50分間書いているね。 ごめんね

내가 생각하는 가장 어릴적 기억은 아버지가 외삼촌들과 싸우고 있었습니다.//
그때 당시가 4~5살 쯤이였습니다.//
첫번째 기억이 창문이 깨지고 머리에 피가 나고 있는 모습의 아버지와 눈물을 흘리시는 모습의 아버지 였습니다.//
할머니집에서 살다가 진주에서 유치원때부터 학교를 다녔습니다.//
학교에서 끝나고 오면 두려웠습니다. 항상 매일 아버지는 술을 마시고 새벽 4~5시까지 술을 마시고 가족들을 꿇어 앉히고 설교를 하셨습니다.//
우리 삼형제는 이유 없이 뺨을 맞거나 다리에 매를 맞았습니다.//
아팠지만 그때부터 이유가 있을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나중에 얼마나 좋은 축복이 있으려고 이렇게 힘든 시련을 주는걸까?"//
매번 이런 생각으로 살아왔습니다.//
이런 아버지가 주는 시련은 고등학교 기숙사에 들어가면서 끝이 납니다.
아마 그때 사춘기 시절에 성장을 못한것 같아요.//
저의 작은 키라든가..//
그치만 아버지를 제외한 가족중 제가 가장 큽니다.//
중학교 때는 은따였던것 같아요.//
그때 가지고 있던 신념이라던가 생각은 세상에 나쁜 사람은 없으니 모두 친해져야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당시 왕따였던 친구에게 먼저 손을 내밀고 친해졌더니 저도 같은 왕따가 되어 있었습니다.
어느날 학교에서 이야기중에 "너는 목소리 듣기 싫으니까 말좀 하지마라" 라고 하는 말을 듣고 어느샌가 말 수도 적어지고 소심해졌었어요.
그런 시절을 지내다가 고등학교에 들어가게 되고 고등학교 기숙사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고등학교 3년이 지옥이였습니다.
매번 학교 폭력에 시달려야 했고 이유없이 뺨을 맞거나 선배한테는 엎드린상태에서 배를 발로 50번이상 구타 당했습니다.
그때 숨 쉬기가 정말 힘들었던 기억이 있어요.
눈물을 정말 많이 흘렸었습니다.
기숙사에 가기싫었지만 어쩔수 없었어요.
우리 가족은 정말 못살았기 때문에 국가에서 지원해주는 학교에 입학한것이였거든요.
그래도 하나의 버팀목은 춤추는것을 좋아했습니다.
춤추는것이 꿈이라는 목표가 있었어요.
1학년때는 공연을 10번 이상 나갔던것같아요.
항상 매일매일 춤을 췄었습니다.
항상 심장 떨리면서 마음 졸이며 학교를 다녀야 했지만요.
그렇게 어찌저찌 고등학교 졸업을 하게 되었고 졸업식때는 사진도 찍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왔어요.
그런것도 모르고 오지 말라던 학교에 아버지는 오셨지만 함께 바로 집에 돌아갔습니다.
사실 하루카에게 졸업앨범사진을 보여줄때도 심장이 너무 떨리고 무서웠습니다.
중학교 졸업앨범 사진은 제가 볼펜으로 지웠습니다.
저의 학창시절은 좋은 시절이 없어요. 저에겐 지옥이였습니다.
그래서 사실 지금도 생각하면 눈물이 나올려 하고,
지금도 꿈을 꾸면 가끔씩 저를 때리던 사람들이 나와서 괴롭힙니다.
그때마다 통곡하며 눈물 흘리며 잠에서 깹니다.
고등학교 졸업시기에 맞춰서 저의 고등학교에 대학교 포스터가 붙었습니다. 예술학교여서 저는 그때 서울종합예술학교에 지원을 했지만 떨어졌었습니다.  심사위원측에서 인상깊어서 다시 시험을 보러오라고 해서 다시 가려했지만 아버지께서 "합격하지 못해서 다행이다."라고 말을 해서 저의 꿈을 응원해주는 사람은 없구나 생각하고 포기했어요.
그래도 항상 생각했어요.//
그래도 이렇게 큰 고통과 시련에 대한 보상은 있을거라는 생각을 가지고 살아왔습니다.
그렇게 군대에 입대를 하고 군대에서 처음에는 정말 힘들었습니다.
내성적인 성격에 사람들이 많은 집단에 적응을 하지 못했어요.
하지만 남에게 항상 선행을 베풀었고 모든 사람들은 같은 마음으로 다가서야하는 신념으로 살아왔기에 학교에서 그런 이유로 폭행을 당했지만 제 신념을 저버리지 않았어요.
군대에서는 인정 받았습니다. 모두 같은 위치에서 시작하는것이기때문에 저의 행동은 모두에게 인정 받았어요.
이 기억은 저에게 정말 임팩트가 있는 기억입니다.
제가 작전을 나갔을때 군 간부가 모든 병사를 불러모아 병사들을 상담하는 병사를 지원하는 사람이 있냐고 물어봤었습니다.
지원하는 사람이 있었지만 모든 병사들이 입을 모아 "강동영 상병이 하는게 맞다고 생각합니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저는 그자리에 없었지만 정말 좋은 기억이에요.
아마 저는 군대에 적응 못하고 왕따 당하는 병사까지 모두 똑같이 대했기 때문이였던것 같아요.
그렇게 군대에서 전역하고
여자친구와 만나게 되는데 첫번째 여자친구는 두달 정도 만나고 여자친구가 바람을 펴서 헤어졌고
두번째 여자친구는 저의 아버지가 피를 토하고 쓰러져서 고향에 내려가있을때 그 여자친구는 카카오톡 프로필사진에 친구와 파티한 사진을 업로드해서 그때 충격으로 정이 붙어지지 않아 헤어졌어요.
세번째 여자친구는 4년을 만났었는데.. 질투가 너무 많아서 저의 어머니와 누나 친구까지 아무도 못만나게 했었습니다.
그때 당시 사업을 시작해서 잘되고 있었지만 (한달에 400만엔 정도 벌었습니다. ㅎㅎ) 여자친구가 자신에게 신경쓰지 않는다는 이유로 일을 못하게 막았습니다.
그래서 사업도 망쳤고,
아버지가 몸이 아프셔서 어머니의 일을 도와드리게 되었을때 여자친구 자신에게 신경을 써주지 않는다고 "나는 너의 아버지가 죽었으면 좋겠어"라고 말을 들었습니다.
그 이후로 그 기억이 항상 가슴 아팠어요.
그 이후 아버지는 돌아가시게 되었고 전 여자친구를 많이 원망 했던 것 같아요. 
6개월정도 만났을때 성격이라든가 모든게 서로가 맞지 않다는걸 알고 헤어지려고 했으나 계속 울면서 붙잡아 어쩔수 없었고, 헤어지려고 마음을 먹었으나 당시 여자친구는 제가 첫사랑이기 때문에, 처음 만난 사람과 헤어짐이 얼마나 가슴 아픈지 알기 때문에 기다려줬습니다.
그게 3년 6개월 걸렸습니다.
그리고 딱 4년째 되는날이였던 올해 1월 28일에 헤어졌어요.
저는 항상 제가 호감이 없어도 저를 좋아한다는 사람과 연애를 했었어요.
그래서 이번에 처음으로 마음을 잡았습니다.
이번엔 내가 좋아하는 이상형을 만나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인스타그램을 만든지는 4개월정도 된것 같네요.
그래서 인스타그램에서 저의 이상형인 정말 귀여운 여자를 보았고, 처음 느꼇어요. 하루카에게 메세지를 했습니다.
하루카와의 대화에서 저는 항상 설렜어요.
하루카를 처음 공항에서 만났을때는 하루카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정말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 사람에게서 빛이 난다는게 사실이였습니다.
하루카는 저에게 너무나도 눈이 부셨어요.
하늘에서 천사가 내려온줄 알았어요.//
말도 너무 어른스러우면서도 애교가 있고, 저에 대해 배려를 하는 모습 모든것이 하루카는 완벽했습니다.//
너무 떨렸어요.//
천사와 손을 잡고, 천사와 키스를 했을때 정말 이것이 현실인가 꿈인가 구분이 가지않을정도 였습니다.//
지금은 하루카가 저를 사랑해주는것을 아는데도 너무 귀여워서 어디론가 날아가지 않을까 불안합니다.  //
너무 아름다우니까요.//
제가 이 글에서 처음에 말했던 "나중에 얼마나 좋은 축복이 있으려고 이렇게 힘든 시련을 주는걸까?"라는 축복이 하루카라는걸 지금은 느끼고 있어요.//
이말을 꼭 해주고 싶었어요.//
저는 어느센가 이 신념에 대해 포기했었습니다.//
하지만 하루카를 만나고 달라졌어요.//
하루카는 저에게 고통과 시련을 이겨낸 저에게 다가온 축복 이란걸 너무 나도 느끼고 있습니다.//
평생 옆에서 일생을 함께 싶습니다.//
정말 좋아해요.//
10분만 시간 달라고 했는데 40분 동안 적고 있네.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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