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해피엔딩 Unhappy Endings

映画はアンハピエンディングだ。
1999年、演劇アーサーミラーの有名な演劇「セールスマンの死」が米国ブロードウェイの舞台に上がった。
初演されてから50年ぶりに再び公演される演劇を記念して、ある記者が特別な企画を設けた。精神科医の二人に演劇台本を分析してほしいと頼んだのだ。分析結果医師は主人公ウィリー・ローマンが薬物で治療が可能であり、
さらに薬物で必ず治療しなければならない病的状態の一言でうつ病患者と診断した。
原作者アーサー・ミラーは何の意味もなかった。
ニューヨークタイムズを通じて即座に反論意見を出した。
ローマンはうつ病患者ではない。人生の重さに押されただけだ。
彼がそうなったのには社会的理由がある。
ところが、過去には崩れた希望と崩れた夢が生み出す適切な反応とみなした行動を今は精神病とみなしてしまう。
アーサーミラーはいわゆる肯定心理学者たちが残した有害な遺産を指摘した。人間がまともに感じなければならない悲しみに病気というかさぶたを付ける人々すでに十分に幸せなのに何度も幸せになると強要する人々だ。

米国では1990年代から韓国では最近になってより人気を集めるこの肯定心理学の核心は、適度なレベルの幸せでは十分ではないというメッセージを与えるということだ。

人間だから感じられる挫折、人間だから感じなければならない悲しさすらうつ病の信号だと心配し、肯定と楽観の力で、幸せを取り戻すよう促す。するといわゆる幸せ反対論者たちが現れた。
悲しみにもそれなりの目的があると信じる人々だ。
正常生活が不可能なほどうつ病に陥らない限り、人間は悲しみを通じてむしろ人生を直視することになると彼らは主張する。
だから悲しみを早く忘れて無条件に幸せになると言う人をむしろ警戒しろと忠告する。それから私たちは世界のすべてのハッピーエンドを警戒しなければなりません。それは私たちが見たい世界であり、
私たちが実際に生きている世界ではないからです。
映画「追撃者」(チェイサー)の断固たるエンディングを作った監督は、
映画「高齢者のための国はない」(ノーカントリー)の憂鬱な結末を選んだ監督は、「ゾディアック」のその厄介なラストシーンを作った監督は、うつ病者ではなく、ただ憂鬱な現実を心配するリアリストだからだ。

賞賛はクジラも踊らせる。だが、世界には踊りたくないクジラもある法だ。
人間を叱り、世界を非難し、私たちが住んでいるこの地球の恐ろしい
現実をまっすぐ見つめる映画は幸せではなくてむしろ幸せな悲しみのエネルギー。

ありふれるハッピーエンドに反対するアンハッピーエンドだ。

(イ・ジュヨンの「映画音楽」22日分から、、、)

-肯定の心理学が好きだが、ラジオの話を聞いてもう少し自分の感情に率直にならなければならないと思った。
だから悲しい時は悲しく、落ち込んだときは落ち込んでまた明るくなって…


영화는 언해피엔딩이다.
1999년 연극 아서 밀러의 유명한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이 미국 브로드웨이 무대에 올랐다.
초연된지 50년만에 다시 공연되는 연극을 기념해 한 기자가 특별한 기획을 마련했다. 정신과의사 두 명에게 연극대본을 분석해달라고 부탁한거다.
분석결과 의사들은 주인공 윌리 로먼이 약물로 치료가 가능하며 나아가 약물로 반드시 치료해야하는 병적상태 한마디로 우울증환자라는 진단을 내렸다. 원작자 아서 밀러는 어의가 없었다.
뉴욕타임즈를 통해 즉각 반박의견을 냈다.
로먼은 우울증환자가 아니다. 삶의 무게에 눌렸을 뿐이다.
그가 그렇게 된데에는 사회적이유가 있다.
그런데 과거에는 꺽인 희망과 무너진꿈이 만들어내는 적절한 반응이라고 간주한 행동을 지금은 정신병이라고 간주해버린다. 아서 밀러는 이른바 긍정심리학자들이 남긴 해로운 유산을 지적했다.
인간이 마땅히 느껴야할 슬픔에 병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사람들 이미 충분히 행복한데도 자꾸만 더 행복해지라고 강요하는 사람들말이다.

미국에서는 1990년대부터 한국에서는 최근들어 더 인기를 끄는 이 긍정심리학의 핵심은 적당한 수준의 행복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메세지를 준다는거다.

인간이기에 느낄수 있는 좌절 인간이기에 느껴야할 슬픔조차 우울증의 신호라며 염려하고 긍정과 낙관의 힘으로 어서 행복을 되찾으라고 촉구한다. 그러자 소위 행복반대론자들이 나타났다. 슬픔에도 나름의 목적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다. 정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우울증에 빠지지 않는한 인간은 슬픔을 통해 오히려 인생을 직시하게 된다고 그들은 주장한다. 그러니 슬픔을 빨리잊고 무조건 행복해지라고 말하는 사람을 오히려 경계하라고 충고한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세상 모든 해피엔딩을경계해야 한다. 그것은 우리가 보고싶은 세상일뿐 우리가 실제 살고 있는 세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추격자의 단호한 엔딩을 만든 감독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우울한 결말을 택한 감독은, 조디악의 그 착잡한 라스트신을 만든 감독은 우울증환자가 아니라 그저 우울한 현실을 염려하는 리얼리스트일테니 말이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하지만 세상엔 춤추고 싶지않은 고래도 있는 법이다. 인간을 질타하고 세상을 비난하며 우리가 살고있는 이 지구의 끔찍한 현실을 똑바로 쳐다보게 만드는 영화는 행복하지 않아서 오히려 행복한 슬픔의 에너지.

흔해빠진 해피엔딩에 반대하는 언해피엔딩이다

(이주연의 '영화음악' 22일분에서...)

- 긍정의 심리학을 좋아하지만, 라디오의 이야기를 듣고 조금 더 내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져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슬플때는 슬프고, 우울할때는 우울하고 다시금 밝아지고...


Donovan - Hurdy Gurdy Man

Thrown like a star in my vast sleep
I'm opening my eyes to take a peep
To find that I was by the sea
Gazing with tranquility

'Twas then when the hurdy gurdy man
Came singing songs of love
Then when the hurdy gurdy man
Came singing songs of love

Hurdy gurdy, hurdy gurdy,
hurdy gurdy gurdy he sang
Hurdy gurdy, hurdy gurdy,
hurdy gurdy gurdy he sang
Hurdy gurdy, hurdy gurdy,
hurdy gurdy gurdy he sang

Histories of ages past
Unenlightened shadows cast
Down through all eternity
The crying of humanity

'Tis then when the hurdy gurdy man
Comes singing songs of love
Then when the hurdy gurdy man
Comes singing songs of love

Hurdy gurdy, hurdy gurdy,
hurdy gurdy gurdy he sang
Hurdy gurdy, hurdy gurdy,
hurdy gurdy, hurdy gurdy hurdy gurd
Hurdy gurdy, hurdy gurdy,
hurdy gurdy gurdy he sang

Hurdy gurdy, hurdy gurdy,
hurdy gurdy gurdy he sang
Here comes the roly-poly man
He's singing songs of love
Roly poly, roly poly, roly poly poly he sang
Hurdy gurdy, hurdy gurdy,
hurdy gurdy gurdy he sang
Hurdy gurdy, hurdy gurdy,
hurdy gurdy gurdy he sang
Roly poly, roly poly, roly poly poly he 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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