見出し画像

Lunadrift

데이트가 끝날 무렵, 그녀를 바래다주던 중 집이 가까워지자 나는 골목 입구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그녀의 집은 이 골목을 돌아서 조금만 더 가면 나오는 위치에 있었고, 나는 더 이상 발을 들이지 않기로 했다. 문득, 보름달이 길을 환하게 비추며 그녀의 얼굴을 부드럽게 밝혔다.

“저거 봐! 진짜 큰 보름달이네!” 그녀가 신난 표정으로 손으로 달을 가리키자, “와, 정말이네.”라고 답하며 고개를 들어 하늘을 잠시 쳐다봤다.

잠시 동안 우리는 달을 바라보며 말을 잇지 않았다. 달빛에 비친 그녀의 옆모습을 마음속 필름에 담아두었다. 다시 그녀를 바라보며 나는 말했다, “오늘도 즐거웠어.”

“아, 진짜? 그럼 다행이네.” 그녀는 태연하게 웃으며 마치 아까까지의 시간이 남일인 듯 말했다. 나는 일말의 외로움을 서둘러 감추고 마음을 가다듬었다.

이제 돌아서야 할 타이밍인가 싶어 발길을 떼려 했지만, 그녀는 웬일인지 멈춰 서서 두 팔을 벌리며 말했다. “안 안아줄 거야?”

돌아가는 길에 그녀와 거리를 두며 손 한 번 잡지 않았는데, 갑자기 달콤쌉쌀한 얼굴로 포옹을 요구하는 그녀의 감정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속으로 한숨을 쉬며 다가갔다. 그녀의 감미로운 향기와 따스한 체온이 느껴지자, 기분이 진정되는 듯했지만, 여전히 불확실한 감정이 일렁였다. 그런 오묘한 감정을 떨치지 못한 채 눈동자가 마주치자 우리는 가볍게 입맞춤을 했다. 짧은 3초 동안 진하게 맞물린 입술이 떨어지자, 나는 주위를 확인하고 그녀의 등을 가볍게 토닥이며 천천히 떨어졌다.

“그럼 또 볼까?” 부끄러움을 감추려는 듯 짧고 담백한 미소를 짓는 그녀에게 나는 “그래, 또 봐.”라고 답했다. 그녀는 손을 흔들며 골목길을 돌아 집으로 들어갔다. 문이 조용히 닫히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발걸음을 돌렸다.

그녀와 작별 인사를 나눈 뒤, 나는 전철역으로 향하는 길을 걸었다. 함께 걸었던 그 길을 홀로 되돌아가며 차가운 밤공기가 내 피부에 와닿았다. 골목길을 빠져나와 주택가를 지나자, 월빛이 집들 사이로 스며들어 내 앞길을 밝혔다.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는데, 환한 밤길에 위화감이 드는 황홀함과 허망함이 동시에 솟구쳐 올랐다.

그러다 지나쳤던 공원 앞에서 자연스레 발걸음을 멈췄다. 그곳에는 퇴색되어 용도를 알 수 없는 콘크리트 미끄럼틀이 있었고, 그 옆의 가로등 하나가 희미한 불빛을 발하며 외롭게 서 있었다.

어느새 나는 미끄럼틀 위에 올라앉아 전선 위에 떠 있는 보름달과 눈을 마주치고 있었다. 울퉁불퉁한 월면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완전한 모습이었다. 아름다움과 추함이 동시에 존재하는 광경이 내 연약한 말초신경을 자극했다.

드리워오는 월영이 헤묵은 감정을 파헤치며, 스쳐 지나간 온갖 기억들이 무덤 속에서 돋아나기 시작했다. 그것들은 한낱 세포에 불과한 인간인 내 불안정한 내면을 움켜쥐었다. 마음에 저장된 필름이 고양된 감정의 흐름을 따라 나를 허무한 우주로 거세게 밀어냈다.

방금 헤어진 그녀의 기억이 월광에 의해 떠올랐다. 깊게 스며든 순간들이 짧았지만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나는 자신의 궤도를 벗어나고 싶은 지구다. 그런 나를 그녀는 달처럼 공전하며 스쳐 지나간다. 초승달 같은 희미한 마음으로 시작된 관계는 보름달이 되어 완전해지는 듯했지만, 그 실체는 곧 사라지는 불완전한 것이었다. 찰나의 시간 속에서 우리는 서로의 궤도를 맴돌며, 때때로 밝은 빛을 비춰주지만, 나는 그때마다 자전 속에서 방향을 잃고 충동에 휩싸인 채 소멸을 선택하는 어리석은 존재다. 어쩌면 인간 모두가 그럴 수 있다. 서로를 중심으로 돌면서 닿을 수 없는 거리감을 유지한 채, 영구적인 완전함을 추구하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때때로 망각한다.

나는 이미 그녀와 만난 순간부터 느꼈다. 그녀가 무심코 내게 비춰준 한 줄기 빛에 기대어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달콤한 한 순간의 완전함을 보기 위해 우리는 닿을 수 없는 궤도를 빙빙 맴돌았다. 참으로 모순적이고 어리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차라리 인간관계의 얽매임에서 벗어나 그 어느 천체에도 속하지 않는 떠돌이 혹성이 되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목에서부터 심장으로 불길 같은 열기가 타오르기 시작했다. 고독이라는 연료가 그 열기를 더욱 부채질했다. 그 불길은 점차 내 마음 속 저장된 필름으로 옮겨붙어갔다.

그 순간, 주머니 속에서 진동이 울렸다. 그녀에게서 LINE 전화가 걸려왔다. 갑작스러운 진동에 정신이 현실로 돌아왔다. 주위를 둘러보니 기온이 현저히 낮아져 추위가 느껴졌다. 이미 부재중 전화가 하나 와 있었고, “괜찮아?”라는 메시지가 남겨져 있었다.

멍한 상태로 전화를 다시 걸었다. 곧바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지금 어디야?”
약간 숨이 찬 목소리였다.
“아, 미안. 근처 공원이야. 그냥 멍 때리고 있었어.”
“아, 진짜? 연락 안 받길래 찾으려고 밖에 나왔는데.” 그녀의 안도감이 순간 가슴 깊숙이 파고들었다. 나는 당혹스러워 잠시 사고가 멈췄다.
“아, 정말 미안. 여기서 보름달 보다가 정신이 팔려서.”
“아, 그래? 뭐야, 난 또 밖에서 노숙이라도 하는 줄 알고.” 멀쓱하게 사과하자 그녀는 가볍게 웃었다. 그녀의 웃음소리에 혼란스러웠던 마음이 차츰 누그러졌다.
“나 걱정해준 거야?”
“아니, 걱정은 했는데 나오니까 밤공기가 시원해서 좀 걷다 들어가려고.”
내 장난스러운 물음에 그녀는 태연하게 넘겼다.
“그렇구나.”
이 시간에 나와 산책이라니.
가볍게 웃음이 터졌다.
‘그렇게 날 걱정해준 거야?'라고 우스갯소리를 하려다, 그녀의 숨겨진 애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홀연히, 불완전함이 어쩌면 자연스러운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우리는 서로의 궤도를 맴도는 어긋나는 존재들이지만, 마치 달이 차오르는 순간순간이 아름다운 것임을, 소중히 여기자고.

“근데 오늘 어디서 잘 거야?”
“글쎄다. 어디서 잘까.”
“부탁이니까 호텔에서 자, 이상한 데 가지 말고.”
“네네. 알겠습니다.” 나는 능청스럽게 대답하며 공원에서 나와 근처 자판기에서 140엔짜리 블랙 캔커피를 뽑아 손끝에 전해지는 온기를 느꼈다. 그리고 담배 한 개피를 꺼내 커피와 함께 한 모금 마시며 그녀에게 말했다.
“오늘 고마웠어.”
“그래, 나도.”
“오늘은 이만 들어가서 자.” 오렌지색으로 타들어가는 자욱한 보라색 연기가 바람에 휩쓸렸다.
“제대로 돌아갈 수 있겠어?” 그녀의 물음에 나는 다시금 하늘을 올려다보며 대답했다.

“달이 밝으니까 괜찮아.”

この記事が気に入ったらサポートをしてみませんか?